백성은 어차피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배우지 못해 조용해 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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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제작 당시 여러 신하들이 반대 의견을 냈는데 대표적으로 최만리, 김문, 정창손 등이 있다.
부제학 최만리는 언문은 유익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반포해서는 안된다며 논리적으로 반대의견을 냈고,
직전 김문은 처음에는 제작에 찬성하였으나, 이후 말을 바꾸었다.
그리고 응교 정창손은 백성들은 무식해서 교육 시킬수 없다 말했다.
이사건으로 최만리와 김문은 가벼운 처벌을 받았고, 정창손은 파직되었다.
다만 이후 정창손은 꾸준히 복직하였고, 말년에는 영의정에 직위에 까지 올랐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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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6년 집에 귀신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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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환전버튼님의 댓글
환전버튼 작성일
저게 세종이 그전부터 유교 세계관 보급 및 교화를 위해 삼강행실도를 만들고 보급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한 전적이 있음.
정창손이 이걸 우회적으로 언급하면서 깐건데 훈민정음에 진심인 세종이 권력으로 그냥 밀어붙인거라는 해석도 있더라
국민들은 개돼지입니다가 목적이 아니라 님아 그전에도 교화한다고 정책 여러개 했는데 안됬잖아 그런데 훈민정음 만든다고 교화가 되겠음? 이라고 해석함.

먹튀판별기님의 댓글
먹튀판별기 작성일삼강행실을 반포한 뒤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 여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뒤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